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스마르크급 전함 (문단 편집) ==== 부포와 대공포 ==== 그나마 주포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고 그럭저럭 쓸만은 했지만 부포와 대공포의 경우에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이 크게 불리했고 그 중 대공포의 약점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훗날 침몰 당하게 된다. 당장 당면한 적인 영국 해군이 5.25인치 대공/대수상 [[양용포]]를 도입했고, 이 대포는 상당한 고위력을 자랑하는 양용포였으나, 고각에 문제가 있었고 장전속도도 느린데다가 포탑 자체의 무게도 무거워서 말이 양용포지, 사실상의 대수상용 부포나 다름없었다. 이는 영국의 생각이 잘못된 것으로 대공방어는 항공기의 영역이었던데다가, 개전 당시 추축군의 항공세력의 기동력과 화력을 과소평가하고, 식민지 영연방군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 탓이 크다. 하지만 곧 잘못을 깨닫고 미국에게서 받은 [[VT신관]]을 적용하고 '''RP'''시스템을 이용하여 레이더와의 연동을 꾀했으며 [[뱅가드(전함)|뱅가드]]에 이르러서는 '''CRBF'''(단거리 무시야 사격)능력을 보유하여 262형 레이더의 통제 하에 모든 대공포문이 '''자동으로 조준'''되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5.25인치 양용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깨닫고 4.5인치 구경의 양용포를 새로 개발해서 주력으로 썼다. 미 해군의 경우는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가 있다. 이 대포는 [[VT신관]]을 적용하여 강력한 화력과 뛰어난 대공 명중률, 분당 26발의 빠른 연사속도와 빠른 회전속도를 보유했으며 '''현재까지도 5인치 함포가 명맥을 유지하게 만든 원인이 된 명품 양용포다.''' 거기다 수색레이더와 조준레이더의 정보를 받아서 MK37 사격통제장치의 지휘 하에 무시무시한 예측사격능력까지 보유했다. 당장 [[필리핀 해 해전]]에서 보듯이 [[VT신관]]과 이 대공지휘 시스템의 연동으로 미 해군은 공포적인 대공능력을 발휘했다. 물론 이건 1944년의 이야기이고 VT신관의 도입도 1943년의 이야기이므로 공정한 비교는 아니기는 하지만 5인치 양용포 자체는 1934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한 물건이고 대공성능은 그 전부터 인정받았으므로 포 자체는 비교해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수상용 부포와 대구경 대공포를 따로 장비'''했다. 이것까지는 다른 추축국 국가에 비해 떨어지는 발상은 아니었다. 당장 일본과 이탈리아는 활동 반경 내에서 항공기 지원을 받고, 자국의 구축함 세력의 주요 목적이 주력함의 호위가 아니거나 구축함 수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일본은 개함 전투력을 높이고, 이탈리아는 전함에 대수상용 대구경 부포를 장비한 것이다. 독일도 비스마르크가 단독으로 항해하며 구축함 같은 함정과 맞서야 할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수상함용 150mm 부포는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다른 추축국과 상황이 전혀 달랐다. 아예 호위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사방에서 육상 비행장에서 날아오는 항공기 항속거리 안에 들어가므로 시작부터 공습을 처맞는데다가 영국은 항공모함까지 가지고 있으니 [[함재기]]까지 가세해서 '''공습에서 살아남는 난이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적의 구축함 같은 걸 따지기에 앞서서 공습에 대비해서 모든 화기를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국이었던 것이다. 덤으로 북해의 날씨만 믿고 공습에 대한 생각도 제대로 못갖춘 것도 답이 없다. 당장 자기네들의 [[Bf 109]], [[Fw 190]], [[Ju 87]], [[Ju 88]]같은 항공기를 보면서 적 항공기가 이들의 성능의 절반만 된다는 만용스런 생각을 가지더라도 공습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이것도 못한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공간은 물론 중량에서도 동시기 미국/영국 해군 전함과 비교해 많은 점이 불리했다. 당장 포탑 중량만 따져도 미국 전함과 비슷한 대공화력을 뿜어내기 위해 400톤 ~ 500톤을 더 소모해야 했고 그에 필요한 탄약고도 따로 장비해야 했기 때문에 용적/무게 분배 효율이 나쁜편이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문제 외에도 사용하는 포탄들의 종류가 여러가지이기 때문에 보급 면에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렇다고 부포가 성능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부포인 [[http://www.navweaps.com/Weapons/WNGER_59-55_skc28.php|15 cm/55 SK C/28]]은 2연장 포탑인데 포신부앙각도가 -10 / +40도에 불과하며 포신부앙속도도 초당 8도에 포탑선회속도도 초당 9도에 불과하며 포신수명이 1,100발인데 포구초속은 875m/s이며 연사속도까지 분당 6 ~ 8발 수준이기 때문에 대공사격용으로는 종합적으로 볼 때 사실상 무쓸모하며 심지어 근접하는 구축함을 상대하기에도 연사속도와 반응속도가 모두 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포탄적재량까지도 1문당 105발에서 150발이라서 포탄 난사시 쉽게 탄약고가 비어버리므로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비스마르크가 근접하는 영국군 구축함을 포격으로 제대로 쫒아내지 못한게 다 이유가 있다. || [[파일:WNGER_41-65_skc33_pic.jpg|width=100%]] || || [[http://www.navweaps.com/Weapons/WNGER_41-65_skc33.php|10.5 cm/65 SK C/33]] || 주력 대공포인 105mm 대공포의 경우 구체적으로 살펴 본다면 포신부앙각도는 -8도나 -10도에서 +80도이며 포신부앙속도가 초당 10 ~ 12도고 포탑회전속도는 초당 8 ~ 10도며 3축 안정방식이라 3축 안정각도는 -17도에서 +17도이며 3축 안정속도는 초당 5 ~ 10도이다. 분당 연사속도는 15발 ~ 18발이고 포신수명은 2,950발이며 사정거리는 45도 각도로 17,700m이고 대공사격시 +80도 각도로 12,500m까지 대공포탄을 날릴 수 있다. 포탄적재량은 1문당 400발이었으며 포구초속은 900m/s 였다. 일단 포와 탄도 자체는 105mm급으로는 딱히 나무랄데 없는 대공포였으나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항공기에 대응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포신부앙속도와 포탑회전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미 해군의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처럼 전기 모터 구동식이 아닌 유압 구동식이기 때문에 피탄을 당할 경우 화재가 발생할 확률도 높았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였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포탑인데 포좌만도 못한 반쪽짜리 포탑이었다. 포탑의 하부만 존재하는 구조기 때문에 '''포미를 포함한 포신 전체 및 구조물이 아무런 방어조치 없이 노출'''되어 사소한 피탄이나 포탄 파편이 쏟아져도 동작정지 될 수 있으며 심지어 북해의 험한 파도 먹고 바닷물이 잘 침투되어 수시로 전기고장에 시달렸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론상 최강만 생각한 나머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신뢰성이 없는 3축 안정식 구조를 탑재하는 바람에 신뢰성이 바닥이었으며 구경 자체도 대함전에 사용하기에는 타격력이 모자란 105mm라 구축함 상대하기도 곤란해지는 통에 그냥 대구경 대공포로서만 주로 사용했다. 종합적으로 따지자면 심지어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인다는''' [[일본 제국 해군]]보다도 성능이 떨어진다. 일본의 주력 대공포인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89식 대공포]]는 후기형이 포신부앙속도는 초당 16도, 포탑회전속도는 초당 16도를 움직이는 반면에 비스마르크의 대공포는 포신부앙속도가 초당 10 ~ 12도며 포탑화전속도는 초당 8 ~ 10도로 일본 해군보다 못한 수준이다. 물론 분당 연사속도는 15발 ~18발로 스펙상 14발인 일본 해군보다 1발 앞서기는 하지만 일본의 주력 대공포는 127mm이기 때문에 구경이 더 크고 무거운 포탄을 발사하므로 속사능력에서 더 뛰어나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실 89식 대공포는 최우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축군 입장에서는 그럭저럭 평균적인 성능을 가진 대구경 대공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일본 해군의 자랑거리인 [[98식 10cm 65구경장 함포]]와 비교하면 참담해지는데 구경이 비슷한 100mm임에도 불구하고 밀폐포탑인데다가 포신부앙각도가 -10도에서 +90도이고 포신부앙속도는 초당 16도, 포탑선회속도는 초당 11도에서 16도이며 분당 연사속도는 15발에서 21발이었다. 일본이 양산능력이 딸려서 169문밖에 못만들고 포구초속이 1,000m/s라 대공사격고도 13,000m를 얻는 대신 포신수명이 350발에서 400발이라는 약점이 생기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추축군 해군이 운용했던 대공포 중에서 이것과 견줄만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당연하게도 비스마르크급의 105mm 대공포와 비교하면 엄청난 우위를 가진다. 거기다 대공/대수상용 포들을 따로따로 장비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포의 개수는 늘어났고 부포 탄약의 유폭에 따른 데미지 컨트롤 능력에도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자칫 잘못하면 중앙부 갑판에 화재가 번지고 유폭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포와 대구경 대공포의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실전에서 쓴 맛을 본 후에는 부포의 탄약 적재량 대다수를 대공사격용 시한신관도 달 수 있는 대공포탄 겸용 [[고폭탄]]으로 바꾸고 [[철갑탄]]은 소수만 보유했으며 대구경 대공포의 경우에는 [[철갑탄]]도 도입하여 미약하나마 대함공격용으로도 사용하도록 탄약배치와 종류를 바꾸었다. 여기에 더해서 주포와 부포에 일본의 [[3식 통상탄]] 비슷한 대공포탄을 개발해서 추가했으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워낙 포 자체의 기본 능력이 딸리니 답이 없었고 새로 도입한 대공포탄도 별로 성능이 안좋았다. [* 이 뒤에 미 해군은 부포체계를 통일했다고 서술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류다. 전쟁 전에 미해군과 영국 해군 역시 독일 해군과 비슷해서 다양한 부포와 대공포를 혼용했다. 예를 들어 미해군이 전투함의 함포를 20mm 오리콘, 40mm 보포스, 127mm 38구경장 양용포로 일원화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다. 태평양함대 전함군은 진주만과 본토에서 수리하면서 교체했고, 상대적으로 대공위협이 적은 대서양함대의 전함군은 거의 개선없이 종전을 맞기도 했다.] 부포와 대구경 대공포가 문제라면 소구경 대공포라도 좋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설상가상이었다. 대구경 기관포로서 장비한 [[http://www.navweaps.com/Weapons/WNGER_37mm-83_skc30.php|3.7 cm/83 SK C/30]] 2연장 대공포는 [[https://youtu.be/CuG0vqimWow|'''단발식이다.''']] 운용인원만 쳐도 일본제 25mm 3연장 대공포보다 많은데다가 '''분당 30발'''이라는 처참한 발사속도를 지녀서 [[소드피시]] 같은 허접한 뇌격기조차도 격추시키기 힘들었는데다, 이게 여기저기 고슴도치처럼 많이 박혀있던 것도 아니고 '''고작 16문만 장비되었다.''' 설상가상으로 37mm 포는 함교나 함재기 격납고 같은 상부 구조물 옆에 설치되었으므로 현측으로 사격 가능한 포문은 실질적으로 8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이없게도 '''항공기 저격'''을 노린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좌는 3축안정 방식이었고 포탄은 [[미넨게쇼스]]까지 도입해서 작약을 꽉 채워놓았다. 이래놓고 제대로 된 사격통제장치와 조준장치를 갖추지 않았고 포신부앙과 포좌선회를 모조리 '''수동'''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대공사격은 말 그대로 [[마탄의 사수]]급 포수가 있어야 제대로 가능했다. 물론 옆에서 광속의 속도로 장전해주는 장전수와 포신부앙과 포탑선회를 고속으로 시행하기 위해 수동핸들에 불이 나도록 미친듯이 돌리는 보조인원도 있어야 할 지경이다. 독일이 이럴 동안 미국의 조약형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에도 건조 당시 1.1인치 기관포가 16문이 있었다. 해당 기관포도 성능 면에서는 영 좋지 못했는데 작동불량이 잦았고 근접방어수단으로서는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부적절했으며 그러면서도 기관총과 양용포 사이의 간극을 메꿔주기에는 위력과 사거리가 부족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오리콘 20mm 기관포]]와 [[보포스 40mm 포]]로 신속하게 대체되었으며 대공사격의 부족을 빨리 지적받아서 수량도 미친듯이 늘린 것을 생각하면 대공사격에 대해 독일의 생각이 답없다는게 딱 느껴진다. 결국 실전의 쓴맛을 본 이후에나 티르피츠는 개장을 거치며 [[Flak30/38|2cm C/30]]기관포를 58문씩 도배를 했지만 [[http://www.navweaps.com/Weapons/WNGER_20mm-65_c30.php|2 cm/65 C/30]]의 성능은 [[96식 25mm 고각기총]] 수준이었다. 당장 20발 탄창으로 장전하는 방식 덕분에 카탈로그상 분당 280여발이 실전에서 120발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똑같다. 그 외에도 일장일단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도토리 키재기다. 설상가상으로 '''3.7 cm/83 SK C/30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보다 대구경의 대공무장은 일체 증설되지 않았다. 그와중에 일부 순양함이나 구축함에는 4cm Flak 28, 즉 독일제 [[보포스 40mm 포]]를 달곤 했다. 사실 이것도 처음부터 단 것이 아니라 나중에 대공화력 부족 문제를 인식하고 증설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전에는 노획한 타국의 보포스 기관포를 철광석 대금 대신 [[스웨덴]]에 억지로 넘기다가 스웨덴이 거부한 후에나 멈추었다는 흑역사도 있다. 그런데 사실 독일 육군이나 독일 공군이 쓰는 육상 대공포로는 3,7cm Flak 37 같이 좋은 발사속도(분당 150발)가 나오는 40mm급 대공기관포 및 8,8cm FlaK 같은 훌륭한 대공포가 충분히 있었다. 왜 이런 좋은 대공포를 해군에 도입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SK C/30을 고집했는지는 의문이다. 독일 해군도 [[http://www.navweaps.com/Weapons/WNGER_55_Gerat58.php|5.5 cm/77 Gerät 58]]같은 대체품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1944년에 설계를 시작한 후 패전까지 [[프로토타입]] 1문만 만들고 끝났다. 만약에 비스마르크가 이후까지 살아남아 개장을 거칠 기회가 있었더라면 적어도 티르피츠 수준으로 대공 무장이 증설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1943년 ~ 1944년 시점에서도 티르피츠의 대공능력은 여전히 좋다고 말해주긴 애매한 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위안거리를 찾자면, 프랑스 해군의 [[리슐리외급 전함]]도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빈약한 대공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건조 중 [[프랑스 침공]]으로 완성이 안된 탓이 크며 [[자유 프랑스]] 소속이 된 후에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 대공화기를 미친듯이 증설했다. 따라서 '''비스마르크급 전함이 당대 전함 중 최하위급의 대공무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